비열한 한국은 비리가 구더기처럼 들끓고 있다.

관련 뉴스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108/h2011082702311521950.htm

뉴스 발췌

“참모총장 표창이요? 쳐다보기도 싫어 내버렸어요.”

사지(死地)에 투입됐던 부하들을 외면하는 군 지휘부의 냉대와 차별은 견딜 수 없었죠.”

부상은 심했다. 오른다리 정강이 뼈를 잘라 왼팔에 붙이고 혈관도 이식했지만 뼈와 근육을 간신히 연결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살은 여전히 움푹 파여있고 왼팔과 왼손가락은 힘을 쓰지 못한다.

그래도 망가진 몸은 상관없었다. 진짜 시련은 그 다음이었다. 병원에서 1년 정도 치료를 받자 육군 3군단은 “치료기간이 길어져 소속부대가 바뀌었다”며 관사에서 나가라고 명령했다. 졸지에 가족들은 떠돌이 신세가 됐다. 900여 만원의 병원비도 절반 정도는 본인이 먼저 내고 몇 년이 지나 할부로 나눠 받는 방식이었다.

작전이 끝나자 40여명이 훈장, 20여명이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부상자들은 모두 참모총장 표창에 그쳤다.

그는 전상(戰傷)을 입었고 과거 최우수 교관으로 선정되는 등 촉망 받는 군인이었기에 진급 1순위로 꼽혔다. 하지만 탈락했다. 이 씨는 “주변의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은 심지어 지뢰지역에 잘못 들어가 다리를 다쳐도 진급했다. 난 전쟁터나 다름없는 곳에 뛰어들었지만 비주류인 3사관학교 출신이었다. 차별을 견디며 더 이상 군에 남을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반면 당시 침투했던 북한군 이광수는 해군 군무원에 채용돼 정신교육 교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대조적인 처지에 억울할 만도 하다.

우리가 몸을 바쳤기에 침투한 무장공비를 잡을 수 있었다. 망신창이가 된 부하를 내팽개치면 어떡하나.

Advertise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