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좃왕(킹오브 세좃)은 열등하다.

열등한 반도에서 위인이라 칭할만한 인물이 없다면 닥치고나 있을 것이지

역사를 날조하여, 세좃왕을 위인인양 추켜세우러 드는 반도놈들의 비열함에는 치가 떨린다.

(*’세좃’은 ‘좃이 가늘다.’ 혹은 ‘가느다란 좃’이란 의미이다.)

또한  세좃은 세발낙지같은 역겨움을 가지고 있으니, 세좃낙지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열등한 한국은 애초에 문자가 없었다. 문맹률이 높나 낮냐를 따지기 이전에 문자 자체가 없는 열등한 후진국이였다.

세좃은 자신이 문자가 없는 후진국의 왕이란 사실에 심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고, 지가 만들어보겠다고 설치기 시작했다.

결국, 세좃은 훈글(훈민정음이라고 거창하게 지껄이는 조센징도 있다.)을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의 기득권층인 사대부라는 족속들은 모화사상에 반대되는 것이라며 크게 반발을 했다.

(*모화사상(慕華思想)은 중국(中國)을 섬기며 중국(中國)의 문물과 중국(中國)의 방식을 흠모(欽慕)하여 따르는 사상(思想)이다.)

양반 사대부 왈  “네 이놈 세좃! 어디 감히 중국의 문자를 두고 니까짓게 설쳐대나. ”

세좃낙지는 이에 끽소리도 못하고 빌빌 거렸다.

당시에 양반들은 중국의 글을 배웠고,  백성들은 농사나 지었다.

양반들은 훈글을 무시했고, 백성들은 배울 기회도 없었다.

훈글은 보급되지도 않고, 세좃낙지는 죽었다.

세좃은 1450년대에 죽었다.

그 후 수백년동안 중국의 한자만을 양반이 배웠고, 백성들은 학문을 배울 기회도 없었고,

훈글은 보급되지도 않았고 학회조차도 없었다.

수백년 후에 일제시대에 처음으로 한글이라는 명칭이 만들어지고, 한글이 정립되었으며, 의무교육이 도입되어 전국민이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어 한글이 보급되었다.

일제시대에 일본이 정립하고 보급한 한글, 일제시대 은혜 중 하나인 한글을 감사히 쓰도록 하여라.

Advertisements